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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연재 1 "왜 예배사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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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저스틴 댓글 0건 조회 41회 작성일 20-02-14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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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2005년 4월호 예배디자인 시리즈 1

왜 예배사역인가?

이유정


매 주일마다 지역교회 현장에는 대부분 평신도들이 섬기는 다양한 사역들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런데 유독 예배는 사역이라는 범주에서 제외되어 왔다. 평신도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예배전통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기성교회에서 신자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강조해 온 것이 '예배'였다. QT, 전도, 새벽기도, 구역예배, 기도 안한다고 정죄하진 않는다. 그러나 성수주일 못하면 죄의식을 갖도록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들은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주일예배 현실은 어떤가? 김남준 목사는 그의 책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에서 "한국교회가 공적인 예배에 대해 경박하고 의무감 없이 배교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등록한 교인들의 수에 비하면 비참할 정도로 적은 숫자만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고, 예배를 하나의 문화행사 정도로 여긴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인내가 필요한 종교적 의무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도 따분하고 지루해진 하나의 종교적, 형식적 절차가 되어버린 것이다

성수주일을 강조해온 선배들의 신앙유산에 비해 실재 예배의 현장은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 중요한 예배를 위해 왜 훈련된 예배 사역팀을 조직하지 않는가? 어차피 예배를 위해 목회자들을 수 십 명씩 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평신도들을 왜 놀리고 있는가? 왜 평신도들은 구경하고 목회자들은 보여 주는 이분법적 구조를 만들어 놓았는가? 이것은 종교개혁 이전의 모습이다. 예배의 모든 요소들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 아닌가? 종교개혁자들의 주창했던 2가지 모토 가운데 우리는 "말씀을 평신도에게 돌려주자(Returning word to the people)"에만 익숙해있다. 두 번째 모토인 "예배를 평신도에게 돌려주자"(Returning worship to the people)는 의외로 주목받지 못했다. 수세기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예배를 평신도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가 돌아왔다. 

이제 우리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가 되었다. 예배는 사역이다. 평신도들도 사역의 주체로 참여해야 할 중요한 사역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역교회 예배갱신의 키워드를 '목회자에서 평신도로'로 본다. 이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한빛지구촌교회는 현재 주일평균출석 600명으로 이민교회 가운데 중형 사이즈에 속한다. 그 가운데 성가대 30명을 포함한 160여명의 평신도가 예배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는 필자 한명 뿐이다. 음악을 전공한 지휘자, 반주자 외에 전임 미디어 스텝 한 명을 포함해서 모두 평신도들이다. 필자는 전통과 타성에 젖어있는 주일 예배를 깨우기 위한 방안으로 목회자 중심의 주일 예배 개념을 '예배 사역' 개념으로 전환하기를 제안한다. 따라서 이 글은 예배 사역이 무엇인지, 예배를 사역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인지, 왜 새삼스럽게 예배 사역이 필요한 것인지 등을 나눌 것이다. 

먼저 예배사역에 대한 개념 정립부터 시작하자. 사역이란 무엇인가? 사역(ministry)은 어떤 직분을 갖고 봉사하며 섬기는 것이다. 예배는 무엇인가? 영어의 worship은 가치(worth)와 신분(ship)의 합성어이다. 즉, '어떤 이에게 가치와 존경을 돌리는 것'을 뜻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예배한다는 단어를 serve 즉 섬긴다는 표현으로도 사용한다. 이를 종합해 보면 교회 안에서의 예배사역이란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돌리기 위한 공식 예배모임에 특정한 직무를 갖고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왜 '예배사역'이란 단어가 우리에게는 낯설게 다가오는가? 그동안 한국교회는 예배절차나 결정권에 평신도들이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것에 대해 금기시 해왔다. 평신도들은 성가대와 대표 기도자 이외에 예배 속에 특정한 역할로 참여하는 것도 한정되어 있다. 예배를 사역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한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다. (1) 예배는 그냥 정해진 순서대로 드리면 되는 것이지 이를 사역의 대상으로 여길 필요와 이유가 없었다. (2) 예배는 전문적, 창조적인 사역의 개념보다는 전래되어 온 전통을 따르는 의식의 개념이었다. (3) 예배를 목회자들의 전유물처럼 인식해 왔다.

심각한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과연 목사들은 예배에 대해 전문가들인가? 이 질문에 대해 한국교회 신학교 시스템을 직접 경험해 온 나 자신부터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3년 동안 신학교(M.Div.) 과정에서 예배에 대해 배운 것은 한 과목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딱딱하고 재미없는 예전에 관한 클래스였다. 최근에 몇몇 신학교에서 예배학 과정을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예배에 대해 개인적인 공부와 체험, 그리고 전통을 통해 습득해야 한다.

최근 돌아가신 노던 침례신학교 예배학 석좌교수 로버트 웨버가 30년 전에 지적한 미국 신학교의 문제점이 오늘날 한국 신학교 교육에 정확하게 적용된다. 즉,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 히브리어와 라틴어를 통해 성경을 깊고 정확하게 해석하는 훈련을 받는 동안, 성경 속의 예배 언어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한다. 하나님의 구속과 계시에 대해 신학적 훈련을 받는 동안, 예배 안에서 사람들이 그 하나님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거의 배우지 못한다.”  


예배사역의 3가지 당위성을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께서 지역교회의 정기적인 회중예배 속에서 사역하신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고, 시편 22편 3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셨다. 구약시대에 제사 드리는 성막속의 하나님의 임재는 백성의 죄를 사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사역의 가장 중요한 키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예배 모임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께서 상처 입은 심령을 치유하신다. 죄악을 깨닫게 하신다. 어둠 가운데서 밝은 빛을 보게 하신다.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져 있던 마음을 눈 녹듯 녹이신다. 영적침체에 빠져있는 우리를 회복하신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도를 변화시킨다면 이처럼 영향력 있고 효과적인 사역이 어디 있겠는가? 

그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사역하실 수 있도록 예배 사역자들은 최대한 성령님께 민감해야 한다. 설교자는 말씀을 통해 교만으로 굳은 성도의 목과 타락으로 먼 두 눈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섬겨야 한다. 또한 죄로 무뎌진 지각이(히 4:12) 성령의 감화로 깨어져서 회복될 수 있도록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워십리더는 찬양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경험하도록 준비해야 하며, 성도들의 상처입고 엉클어진 감정이 성령의 깊고 부드러운 터치로 회복될 수 있도록 성령께 민감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

그런데 예배는 하나님과의 전인격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찬양을 통해 감정적으로 하나님과 만난다. 말씀을 통해 지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회개와 헌신을 통해 의지적인 결단이 일어난다. 짧은 1시간 안에 한 인간의 전인격이 반응을 한다. 그 결과 때로는 깊은 도전을, 때로는 감격의 눈물을, 때로는 커다란 감화와 내적인 변화를 체험한다.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뒤바뀐다.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다.  

필자도 군대에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다. 20여 년간 허무와 혼돈, 두려움과 회의에 가득 차 있던 삶이 1993년 7월 어느 날, 주일 예배 1시간 반으로 180도 변해버렸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지각변동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내면의 깊은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전인격으로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예배 속에 하나님이 일하신다. 


둘째, 이미 많은 이들이 예배 사역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예배의 히브리어 어원인 "아베다"나 헬라어 "라테리아"는 섬김(Service)의 의미를 내포한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주를 섬겨 금식할 때"를 NIV에서는 “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으로 표현했고, 표준새번역, 현대어번역에서도 "예배할 때"로 번역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예배라는 개념 속에는 섬김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봉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섬기는 일이라면 그것은 예배사역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음향 담당, 피아노 및 오르겐 반주자, 예배당 청소, 꽃, 안내위원, 헌금위원, 베이비시터 등 이미 많은 성도들이 보이지 않게 자신의 은사에 따라 예배사역에 참여해왔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는 주차장에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주차사역을 한다고 들었다. 한빛지구촌교회의 경우 성가대는 물론 보컬, 연주, 성가대, 광고제작, 멀티미디어, 조명, 비디오, 음향, 통역, 예배기획, 프로그래밍, 프레젠테이션, 안내, 드라마, 예배컨퍼런스 등 다양한 평신도 예배사역자들이 팀워크를 이루어 예배와 관련된 사역을 기획하고 섬긴다. 이런 다양한 예배사역에 평신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현존하는 미국 교회 목사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가운데 하나인 빌 하이벨스가 솔직한 고백을 하나 했다. “나에게 긍휼의 은사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잘 안다. 우리교회 교우 중 당뇨병(diabetes)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한 여성이 있다. 어떤 기도회에서 나는 이 여인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내 어색한 행동(awkwardness) 때문에 괴로워해야 했다. 나는 이 역할을 잘 못하고 있었다. 그때 어떤 장로 하나가 대신 이 여인에게 접근했다. 그는 지체함 없이 이 여인을 안아주며 볼에다 키스를 하고 말했다. "오 제인, 당신이 오늘 이곳에 와 주어서 정말 반갑소." 그가 그 여인을 잡고 있을 때 그 여인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장로가 너무 자연스러웠고 부드러워서 그의 사랑과 관심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역교회 사역은 유명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나름대로의 은사를 깨닫고 자신의 은사를 순종함으로 사용할 때 교회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예배사역도 마찬가지이다. 예배와 관련된 다양한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단순히 목회자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예배는 철저히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팀으로 이루어진 사역이 필요하다. 예배학자들의 공통적인 의견 가운데 하나가 예배는 하나의 드라마라는 것이다. 드라마라면 우리가 매일 TV를 통해 즐기는 프로그램인데 경박하게 무슨 드라마란 말인가? 공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예배야 말로 가장 수준 높은 드라마임을 확신한다. 

성경은 인류 역사상 베스트셀러 중 베스트셀러이다. 이 성경 이야기야 말로 우주를 창조하고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물론, 죄로 죽어가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스토리,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날마다 나를 위해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계시는 성령님 이야기,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꿰뚫는 우주적인 대하드라마가 아닌가! 하나의 드라마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준비와 연습이 필요한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드라마를 준비하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데 어찌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준비는 사역의 개념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론

40년 전, 에이든 토저의 고백처럼 "예배는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 잃어버린 진주”였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세상은 바뀌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도 개혁의 몸살을 앓고 있고, 예배갱신에 목말라 하고 있다. 이 거대한 필요를 채울 예배사역이 필요한 때이다. 과연 현재 우리가 드리고 있는 전통예배, 목회자 중심의 예배는 성경적이며 바른 예배모델인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교단과 신학교 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예배를 사역으로 알고 하나님을 섬기고, 회중이 예배하도록 섬기는 예배 사역의 가치가 재평가되어야 할 때이다. 예배는 사역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가장 강력하며 효과적인 사역이다.



이유정 목사_남성듀엣 '좋은씨앗'으로 CCM 가수 활동을 했으며, 연세대학교(B.A.)와 총신대학원(M.Div.), 리버티신학대학원(Th.M., D.Min.)에서 공부했고, 지금은 예배사역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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