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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연재 2 "지역교회 예배영성의 공동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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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저스틴 댓글 0건 조회 60회 작성일 20-02-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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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2005년 5월호 예배디자인 시리즈 2

지역교회 예배영성의 공동체성

이유정 목사


최근 LA지역의 한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이다. 자신이 경험한 예배 인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주일 예배 찬양 인도를 할 때 멘트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심할 때는 곡이 끝날 때 마다 하고, 그 멘트 때문에 예배가 안 된다는 것이다. 가르치려는 태도는 물론 예배와 상관없는 설교체의 장황한 설명들을 참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단 위에서 사역하는 목회자, 사역자들이 오히려 회중 속의 평신도들보다 예배를 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왜 이런 현상이 한국교회 찬양운동이 시작된 이래 20년이 지나도록 반복되고 있는가? 그것은 이 사역에 대한 정확한 정체성과 자기이해는 물론 신학적인 자리매김이 부족한 연유인 듯싶다. 

 

패러 처치와 지역교회의 예배영성 구분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터를 바로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찬양과 경배운동의 기원은 지역교회보다는 예수전도단이나 두란노 경배와 찬양 같은 패러 처치 선교단체에서 시작되었다. 두란노, 다드림, 예수전도단 모두가 사실은 선교가 그 궁극적인 목적인 선교단체이다. 90년대에 이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워십리더들이 개 교회에 들어가 찬양예배를 시도하지만 교회 리더십과 예상치 못한 마찰을 경험하게 된다. 필자는 그 이유를 패러 처치 예배영성과 지역교회 예배영성의 차이로 본다. 

선교단체는 동질감을 갖은 또래집단의 모임이다. 선교를 목적으로 한 선교동원적 방향성을 지닌다. 예배와 찬양모임에 모인 부류도 비슷한 또래집단이다. 워십리더의 멘트가 좀 과격해도 선배의 사랑어린 일침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 많은 경우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유롭게 맡겨드리는 예배(Free flowing)가 예배인도자가 추구해야 할 지고의 예배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찬양할 때 방언찬양을 한다던가, 성령께 의지해서 자유롭게 찬양이 이어지도록 흐름을 맡기는 경우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모델은 일반적인 지역교회의 모델로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지역교회는 흩어지는 교회의 성향도 있지만 모이는 교회로써 예배, 훈련, 봉사, 교제 등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한다. 예배에 참석하는 부류도 다양한 문화적, 세대별 계층이 함께 모인다. 남녀노소, 불특정 다수이다. 회중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이 안 된 상태에서의 불필요한 멘트는 99% 방해요소이다. 한 마디 멘트로 예의를 벗어난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고, 처음 친구에게 붙들려 교회에 나온 사람이 두 번 다시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만큼 오해를 줄 수도 있다. 

 

멘트, 꼭 해야 하나?

멘트에 대해 좀 더 다루고자 한다. 찬양인도자에게 멘트는 사명이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찬양인도자는 회중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설교하는 목사들만큼 훈련받은 자들이 아니다. 일반 목회자들은 신학교 시절부터 설교 이론과 실재를 지속적으로 훈련받는다. 설교자들에게 1분 1초는 피 같은 시간이다. 그런데 찬양인도자들에게 회중예배 1시간 가운데 15분에서 20분의 시간을 따로 떼어 맡긴다는 것은 이전 세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베려가 아닐 수 없다. 회중 커뮤니케이션을 훈련받지 않은 워십리더가 멘트를 할 때 오히려 역효과인 경우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15분에서 30분가량의 주일 찬양시간은 회중이 찬양의 지성소에 집중하여 들어가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찬양과 음악을 통해 회중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도록 섬기는 것이 찬양인도자의 역할이라면, 곡마다 설명하고, 멘트를 늘어지게 함으로써 오히려 회중의 찬양 시간을 빼앗는 태도는 직무유기이다.  

교회의 공식 예배 가운데 드리는 경배와 찬양 시간은 자유로운 흐름 대신 예배에 참여한 모든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공동체적 배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워십리더의 책임은 예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찬양 곡 선정부터, 가사 파워포인트, 전주, 간주, 후주 등의 편곡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이는 지역교회 예배는 개인 영성 보다는 공동체적 영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독교 영성, 공동체성

필자는 몇 년 전, 뉴욕뉴저지 찬양과 예배 컨퍼런스에서 김돈식 교수의 강의와 토론을 통해 영성에 대한 공동체적 개념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영성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영성 있는 목사", "영빨 있는 찬양 사역자", "영감 있는 설교" 등등 "영적"인 수식어가 앞에 붙으면 뒤에 따라오는 명사는 갑자기 신령 해진다. 과연 기독교 영성은 이처럼 아무 곳이나 개별적으로 갖다 붙이면 즉시 뜨는 인스턴트 라벨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인가? 실제로 영성에 대한 한국교회의 이해에는 종종 혼란이 엿보인다.  

김돈식 교수에 의하면 포스트모던 사회인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화적 가치는 '프라이버시'이다. 종교도 공동체적인 가치가 아닌 개인적인 선택의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안에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과의 '친밀감'(intimacy)이 그 도를 넘어서 공동체와의 거리를 쌓는 개별적인 '사생활'(privacy)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생활이 다분히 개인주의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대변해주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진정한 영성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 친밀감을 넘어서 믿음의 공동체, 더 나아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그 정체성(identity)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균형 있는 영성을 지닌 크리스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배와 예배사역의 개념 정리

당시 필자는 며칠 동안 이 주제를 갖고 목회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예배'와 '예배사역'의 개념에 대해 얽히고설킨 실타레의 실들이 풀어지듯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것은 지역교회 예배사역은 공동체적 영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라는 개념은 기독교의 핵심가치 가운데 하나이다. 현대교회가 무력해진 이유는 바로 건강한 공동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성은 매주 모이는 예배행위로 드러난다. 사도행전 2:42의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는 말씀처럼 초대교회 예배는 말씀과 삶을 나누는 공동체성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휘튼 대학교 성서학 교수인 길버트 빌키지언은 말한다.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본질 가운데 그 기반을 두고 있다. 하나님이 공동체이시므로 그분은 공동체를 창조하셨고, 공동체는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형성은 그리스도인들의 선택 사항이 아니며, 모든 시대의 모든 신자를 하나로 묶어 주는 거룩한 명령이다."

그러므로 흩어져 있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거룩한 예배 행위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확인하고, 그 본질을 회복하는 사건이다. 안타까운 것은 워십리더나 예배사역자를 훈련하는 많은 예배컨퍼런스, 예배학교들이 예배를 개인 영성, 특히 워십리더의 영성 차원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배의 가장 중요한 가치요 본질인 공동체성은 깊이 다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예배는 어떤 방법론이나, 스타일이 아니다. 예배는 doing보다는 being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전문적인 예배사역자들에게 국한하기 보다는 크리스천이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예배원리이다. 요한복음 4장 23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지 '예배사역자'를 찾으신다고 하지 않았다. 

예배의 본질은 관계이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을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로 풀어갈 때 우리의 예배는 개인 예배로 끝나는 것이고, 찬양인도자들의 예배인도 형태도 공동체적 영성을 무시한 무질서한 혼란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극단적으로 무교회주의까지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는 개인의 믿음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히려 '교회'의 공적인 예배시간을 통해 공동체적 믿음의 경험을 표현하고 담아내는 행위와 참석한 회중을 그 행위에 동참하도록 섬기는 리더십,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특정한 문화와 형식이 필요하다. 

 

예배의 형식, 하나님과의 관계를 담아내는 그릇

다시 말해서 주일 예배는 교회라고 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공동체적 행위이다. 즉,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응답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화답함으로 출신과 배경, 학벌과 빈부를 무론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라고 하는 코이노니아(koinonia)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공예배의 모습이다. 이를 위해서 혼자 예배할 때의 자유스러움이 아니라 일정한 순서나 형식, 즉 예배에 모인 자들의 문화와 언어에 맞는 특정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배의 형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담아내는 그릇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이 중요한 것은 바른 관계를 위한 공동체적인 틀과 특별한 가치를 형성해준다. 청혼을 할 때 시장이나 길거리 같이 산만한 곳보다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아늑한 조명으로 두 사람의 정서를 차분하게 해주는 운치 있는 장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상적인 장소, 평소 생활 방식으로는 관계의 가치를 고귀하게 못한다. 결혼식은 어떤가? 약속된 장소, 아름답게 치장한 식장, 초대된 손님들, 정성을 다해 디자인된 식순, 특별 축하 연주 등의 공동체적 형식이 두 사람 간의 사랑과 약속, 헌신의 가치를 극대화해준다. 

예배인도자들은 예배자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예배의 '개인적 영성'과, 지역교회라고 하는 공동체 속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섬기는 예배사역의 '공동체적 영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한 성령을 마음에 모신 주의 자녀들이 주일마다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적 고백과 예배는 그 나름대로의 원리와 문화 그리고 형식을 통해 공동체적 영성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공동체적 예배인도의 실재

그렇다면 지역교회 안에서 경배와 찬양인도자가 공동체적 영성을 적용해서 예배를 디자인하고, 찬양인도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와 과정의 이해가 필요한지 다루어보자. 

첫째는 지역교회 안의 질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쓴 편지에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But everything should be done in a fitting and orderly way)(고전 14:40) 했다. 두 가지 측면만 살펴보자.

- 예배 인도자의 측면

먼저 예배 인도자의 측면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그날 예배순서나 음악의 선곡까지 내어 맡긴다고 하자. 워십리더가 주일 아침에 와서 6곡의 찬양리스트를 연주자들에게 주고 인도하는 대로 따라오라고 했을 때, 과연 1년 52주 내내 예배 인도자가 성령의 완벽한 인도하심에 의지해서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곡을 부를 때 다음에 어떤 곡을 해야 하는지 성령께서 원하시는 찬양을 완벽하게 분간해서 20-30분을 리드하는 일이 가능한가? 물론 특별히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예배 인도자에게는 그러한 달란트가 있을 수도 있다. 만일 자유로운 흐름(free flowing) 형식의 예배를 모든 연주자들에게 요구해야 한다면 예배를 섬기는 밴드 팀은 수백 수 천곡의 곡들을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키나 어떤 박자를 요구해도 긴장감 없이 연주해낼 수 있는 능수능란한 연주자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몇 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교회 밴드 연주자들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밴드 연주자들은 워싱턴 DC 인근 지역에서 그나마 중상위권의 아마추어 연주자들이며, 한 번의 예배를 위해 2회 연습을 함에도 불구하고, 실재 예배드릴 때 틀리거나 서로 음악적인 팀워크가 맞지 않았을 경우 아쉬움과 함께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도 받곤 한다. 이것이 지역교회 연주팀의 현실이다. 그런데 편곡도 없고, 연습도 없이 주일예배를 섬긴다는 것은 커다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매주 일어나거나, 자주 반복될 때, 음악적 정서가 예민한 음악인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워십리더가 연주 팀원들을 배려하지 않는 또 하나의 직무유기이다. 

- 돌발적인 성령의 개입

한편, 경배와 찬양 프로그램을 충분히 연습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성령의 개입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경배와 찬양사역 진영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통용되고 있다. 즉 찬양을 인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성령의 역사로 연습되지 않은 새로운 곡을 하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워십리더는 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패러쳐치의 예배 집회 상황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역교회 공동체적 예배영성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워십리더가 갑작스럽게 새로운 곡을 찬양하게 될 경우, 제일 먼저 반주자들이 당황하게 된다. 피아노와 키보드, 일랙 기타와 베이스기타가 정확한 키와 코드를 알아내어 연주하기까지, 연주팀의 팀워크나 음악성의 수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음악적 혼선이 드러난다. 몇 마디 정도는 듣기 괴로운 불협화음이 연주될 가능성도 있다. 보컬팀의 경우 그 새로운 곡의 가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멤버들이 있을 수 있다. 파워포인트 가사를 담당하는 가사 담당자는 갑작스런 곡의 변화로 인해 혹시 자신이 가사를 잘못 비췬 것은 아닌가 당황하여 위 아래로 가사를 찾다가 결국 새로운 곡임을 발견하고, 비상이 걸릴 것이다. 마음 졸이며 인터넷이나 컴퓨터 내의 찬양 파일들을 찾기 시작한다. 결국 후렴이 끝나갈 즈음해서 가사를 찾아 급하게 파워포인트에 복사(copy)와 붙이기(paste) 기능으로 가까스로 1절부터 화면에 띄웠다. 회중의 입장에서는 무슨 상황인지는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되지만, 갑작스럽게 반주가 끊어졌다가 이어지면서 스크린에 가사가 위 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무슨 일이 생겼음을 감 잡을 것이다. 그 이전 곡까지 은혜스럽게 찬양하며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긴장하게 된다. 회중의 반 이상이 이 새로운 찬양을 모르거나 가사를 모르기에 회중 쪽의 반응도 상당히 썰렁해진다. 

과연 우리가 믿는 성령이 한 사람의 신령(?)한 워십리더로 인해 은혜스럽게 찬양하던 찬양팀, 회중, 미디어 팀까지 일대 혼란에 빠지게 하는 그런 무질서한 분이시겠는가? 물론 이 내용은 최악의 가상 시나리오이지만, 필자도 실재로 몇몇 교회에서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기에, 많은 교회에서 경배와 찬양 시간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필자는 연습 없이 성령의 흐름에 맡기는 찬양인도나, 찬양 도중에 갑작스러운 성령의 음성에 모험하는 태도는 지역교회 예배의 공동체적 영성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결코 모든 지역교회에 일반적으로 권장할 만한 예배의 모델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 공동체적 질서와 성령의 역사의 균형 

이 의견에 대해 성령님을 너무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15분짜리 경배와 찬양을 1절, 후렴, 2절, 후렴 2회...와 같이 찬양을 디자인할 때부터 정해놓고, 하나님께 "이 디자인대로 찬양하겠습니다.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기도했을 때,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 찬양을 받아주시지 않으시겠는가? 지역교회 현장에서는 예배의 틀이 공동체적 질서와 성령의 역사 사이에 균형을 잡기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이 이슈에 대한 김남준 목사의 날카로운 언급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형식을 파괴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령으로 말미암는 자유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예배를 진짜 자유케 하는 것은 성령이고, 그것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영적인 역사의 결핍이지 형식 그 자체만은 아니다." 

- 청중의 입장

다음에는 청중의 입장이다. 예배를 드리는 회중 가운데는 음악적인 감각이 천차만별이다. 게 중에는 음악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람들도 있다. 자유로운 흐름(Free flowing) 예배는 미리 음악적인 연습 없이 임하기 때문에 곡과 곡의 연결이나 편곡에 음악적인 부자연스러움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음악은 영적이기 이전에 음악이다. 음악이 부자연스러우면 인간의 감정도 부자연스럽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음악의 기본을 제쳐두고 너무 영적으로 풀어 가면 그것은 일반은총의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다. 특별은총은 일반은총이 있기에 가능하다. 연습되지 않은 음악적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청중 가운데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면 이것은 회중예배를 섬기는 워십리더의 바른 자세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지역교회 경배와 찬양은 충분한 찬양 디자인과 음악적 리허설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 필자가 섬기는 한빛지구촌교회의 경우, 예배 디자인하는데 10시간 넘게 시간을 투자한다. 1개의 보컬팀이 2부 예배를 매주 섬기며, 또 다른 2개의 찬양팀이 격주로 주일 3, 4부 예배를 섬긴다. 목요일에 보컬팀과 밴드팀 연습, 토요일 오전에 연주팀 연습과 나눔의 시간, 전체 리허설, 주일 오전에 1시간 전에 미리 와서 발성, 악기셋업, 전체 프로그램차트(chart)의 흐름 체크, 15분전에 예배를 위한 중보기도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철저한 연습 과정을 통해 예배 가운데 찬양할 때 매주 성령의 역사를 통한 눈물의 은혜와 회복의 감격이 이어지는 것을 본다.

 

결론

이젠 예배 사역의 전문가로써 공동체적 예배와 찬양사역을 말 할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예배는 항상 고착된 형식에 갇혀 의사소통의 한계를 품고, 인내하고 참아내야만 하는 의식 수준으로 끝나거나, 아니면 신구세대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또 한 세대를 허비하게 될 것이다.

 

 

 

이유정 | 연세대학교(B.A.)와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M.Div.)을 나오고 리버티신학교(Th.M., D.Min.)에서 공부했다. ‘좋은씨앗’이라는 이름으로 CCM 가수 활동을 했으며, 지금은 예배사역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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