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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십리더 매가진] 잠자는 회중을 깨우라: 제자훈련을 넘어 예배훈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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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저스틴 댓글 0건 조회 177회 작성일 20-02-19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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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십리더 매가진 2013년 10월호 - 연재 | 예배3.0


제자훈련을 넘어 예배훈련으로

"잠자는 회중을 깨우라"

이유정



한때 대단한 주목을 받았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필자도 꽤 흥미진진하게 시청했다. 그중에 지금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밀본의 지도자 정도준이 이도 임금이 만든 글자의 잠재력을 깨닫고 따르는 자들에게 말했다. 

"해가 서쪽으로 뜨게 하는 글자이다. 이 글자는 어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누구든 안다면 역병처럼 번질 수 있는 글자야. 글을 알게 되면 읽는 즐거움과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그러면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권력이 움직인다. 이도는 지금 모든 백성들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이다. 무책임한 짓이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쓰는 세상이 오면 사대부는 권력을 잃어. 사대부가 권력을 잃으면 성리학이 조선을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조선이 망한다는 것이다. 글자를 막아야 한다."

 

예배를 회중에게 돌려주자

중세 암흑기의 가톨릭 지도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집권층 사제들이 권력을 잃으면 기독교가 가톨릭교회를 이끌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초거대 기독교제국인 유럽이 몰락할 것을 우려했다. 그 방패막이가 바로 예배였다. 미사 때 평신도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성경을 사용했고, 성가대의 공교한 찬양도 성직자들의 점유물이었다. 평신도에게 예배는 의미도 내용도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의식'에 불과했다. 예배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를 가르는 이중적 계급 구조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회중은 단지 수동적인 관람객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곪아왔던 종양이 결국 터졌다.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개혁자들이 목 놓아 외쳤던 모토 중 하나가 바로 "예배를 회중에게 돌려주자"(Returning Worship to the People)였다. 이 거룩한 개혁 운동은 불같이 일어나 전 유럽으로 번졌다. 비로소 회중은 따라 부를 수 있는 회중찬양과 가사로 직접 하나님께 찬송했고,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으로 설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우려했던 교회의 질서는 무너지기는커녕 더욱 건강해졌다. 교회가 가르쳐왔던 '평신도 계급' 신화, 전통과 제도권에 의해 도제된 '무력한 평신도' 의식이 얼마나 노골적인 거짓말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교회론의 핵심, 평신도

성직자에 비해서 늘 수동적 위치에 있었던 평신도의 위치를 극복키 위해 루터는 만인사제장설을 주창했다. 하지만 그 이후 개신교는 이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7~80년대에 학생운동과 특히 옥한흠 목사의 <평깨> 제자훈련은 잠자고 있던 거인, 평신도를 깨움으로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을 한걸음 진보시킨 쾌거로 볼 수 있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는 옥한흠 목사가 <평깨>에서 제시한 개념은 '평신도의 권리'가 아니라, '평신도의 사역'이었으며, 이것이 그가 이해하는 교회론의 핵심이라 했다. 옥한흠 목사는 한 대담에서 자신의 교회론이 30년 씨름하며 나온 영적 경지라 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교회론은 어떤 영역이나 분야가 아니고, 교회의 본질과 연결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즉,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인가 아니면 평신도인가? 결국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체인 평신도를 위해 목회자가 어떤 사역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회자로서 어떻게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제 교회론의 중심입니다." 그러한 교회론에서 다음과 같은 평신도론이 탄생한다.

"전통 목회는 평신도가 동원(動員)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신도를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주체, 동역(同役)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평신도를 교회의 실력을 대변하는 숫자나 부흥의 도구로 보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도 좋고 열 사람도 좋았습니다. 한 사람이 바로 설 때 이것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옥 목사는 이것이 바로 종교 개혁의 중심사상인 만인제사장 직임을 강조했다.  

 

제자훈련의 궁극, 만인제사장직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이슈가 등장한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부패한 교회론의 회복이요, 회복된 교회의 주체는 목회자가 아니라 평신도요, 이는 결국 만인제사장직의 회복이다.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은 평신도의 만인제사장직을 회복하기 위한 고공행진이었다. 30년이 지났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수많은 한국교회가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었으며, 제자훈련을 마친 수많은 평신도들이 삶이 변화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과연 제자훈련 받은 자가 평깨 스피릿의 목표요, 교회론의 본질로 그토록 강조했던 ‘만인제사장 직’에 온전히 도달했는가? 제자훈련은 평신도를 목회자의 동역자요, 사역의 주체로 회복하는 것에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궁극으로 추구했던 '제사장직', 즉 '온전한 예배자'를 향한 과녁은 빗나간 듯하다. 

만인제사장직은 성직자만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임을 강조한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해서 거룩한 지성소 제사를 진행하는 예배전문가요 예배리더십이다. 평신도의 존재 목적이 '제사장'직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제자훈련의 결과 예배의 현장에서 평신도의 지위와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동적인 관객의 입장에서 예배를 구경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예배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더 나아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삶의 예배를 살아내는 동력을 못 찾고 있다. 삶의 전체를 예배라는 궁극의 관점으로 볼 줄 아는 여유와 시야가 부족하다. 제자훈련 교재 자체에서도 예배는 가볍게 다뤄진다. 

훈련과정에서 공예배가 강조되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전한 '예배자'(요 4:23)요,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서도록 돕는 '예배훈련'은 매우 축소되어 있다.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을 흠집 내기위한 시도는 결코 아니다. 한국교회 역사에 평신도를 회복하는 이정표를 남긴 그의 사역과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산되도록 필자도 응원하고 있다. 단지 그의 제자훈련이 목표로 삼은 '제사장적 정체성'이 21세기 '예배운동'의 화두 안에서 보다 온전하게 발견되어져함을 강조하고 싶다. 

 

예배갱신의 화두, '회중'

미국유학 시절, 교회가 회복해야 할 평신도의 정체성이 60년대 이후 서구 예배갱신의 중요한 화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예배갱신운동의 키워드는 '목회자에서 평신도로'이다. 종교개혁의 모토 중 하나인 '회중에게 예배를 돌려주자'의 현대판 케치프레이즈다. 이것이 60년대 서구 교회에서 초교파적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예배갱신 운동의 주요 신학적 기반이다. 설교를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 전달 방식의 예배에서, 회중이 반응하고 참여하는 예배로의 전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민교회에서 예배디렉터로 사역하던 현장에서 보다 구체화 되었다. 어느 날, 회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 위의 평신도 예배인도자들을 세우고 훈련하느라 7년을 보내는 동안 회중은 여전히 제 자리에 멈춰 있었다. 예배에 지각하고 잘 모르는 곡이 나오면 불평하는 수동적인 관객에 불과했다. 평신도가 예배의 주체라는 인식은 내 심장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배드리는 주체로서의 주도권은 회중이 아닌 목회자와 예배 인도자들에게만 주어져 있었다. "갱신의 화두는 회중이어야 한다." 이 깨달음은 적어도 필자에게는 지난 20여 년의 찬양과 예배사역을 뒤집는 지각변동 같은 사건이었다. 

이는 필자가 지난 10여 년간 북미, 남미, 한국 등지를 다니며 수천 여명의 평신도 예배사역자들을 만나서 훈련하고 세우는 사역을 해오면서 점차 분명해지는 신념이기도 하다. 많은 교회들이 아직도 예배를 철저하게 목회자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제사장인 회중은 그저 관객 수준으로 구경만 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서 TV를 시청하거나, 공연장의 연주를 감상하듯이 최소한의 참여 이외에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이런 교회는 점차 노령화되고 있고, 교회 분위기도 생동감이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수많은 교회들이 평신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은사와 직무에 따라 예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예배를 준비하고, 설교 본문을 낭송하고, 중보기도에 동참하며, 회중찬양을 인도하고, 성만찬을 함께 집도하며, 말씀 가운데 스킷 드라마를 연기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목회자와 함께 예배를 기획하고 특별 프로그램을 짜기도 한다. 목회자와 회중이 함께 예배를 준비하고, 함께 예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런 교회들이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 분위기도 생동감이 넘친다. 성도들이 살아있고, 교회 사역은 물론 삶과 세상을 보는 관점과 자세가 적극적이다.

 

포스트 제자훈련, 예배훈련

2009년 가을, 하나님은 예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던 필자에게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은 그런 예배가 아니야, 너 나 좀 봐라"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잘 준비된 예배음악도, 어떤 양식도, 포맷도 아니다. 나와 하나님이 친밀하게 만나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성령께서 예배회복에 관한 글을 소나기처럼 부어주셨다. 부흥이었다. 불과 3개월 만에 3권 분량의 글이 터져 나왔다. 교회와 사역, 찬양과 예배에 대한 풀릴 듯 풀리지 않던 예배의 맥이 뻥 뚫렸다. 그렇게 <잠자는 예배를 깨우라>가 탄생했다. 20년 시행착오 끝에 찾은 예배의 본질과 그 대안에 대해 인생 걸고 쓴 보고서다. 이 책을 중심으로 예배훈련교재 <성령의 지배를 받는 40일 예배훈련>도 만들었다. 

신앙의 진정한 힘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에서 출발한다. 오늘 교회가 이 예배의 능력을 상실했다. 예배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한 번 만나면 해결될 것을 각종 훈련과 세미나, 교육과 학교에서 해결하려니 힘들고 피곤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불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존 파이퍼의 선언처럼,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이면서 모든 사역의 연료인 '예배', 그 우선순위를 회복하는 일이 이 훈련과정이 추구하는 목표다. 

많은 교회에서 이 교재들로 예배훈련을 시작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찬양팀, 성가대 훈련이 많지만, 사실 이 예배훈련은 예수 믿는 모든 성도를 위한 과정이다. 미래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키우는 예배목사 아카데미의 필수과정도 예배훈련이다. 최근에는 지역교회를 직접 방문해서 평신도를 직접 예배훈련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 교재가 모든 지역교회에 들어가서 제자훈련의 한 과정으로 시행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예배, 제자훈련의 연료

필자가 섬기던 교회에 한 노부부가 매 예배 때마다 30분 일찍 와서 예배실에 앉아 계셨다. 궁금해서 물었다. "왜 항상 예배시간 30분이나 일찍 나오세요?" 답은 평범했다. "처음 예수 믿자 마자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새신자로 교회에 등록했을 때 가장 먼저 받아야 할 훈련은 바로 예배훈련이다. 기독교는 예배하는 종교이다. 성도의 삶은 매주일 공예배와 삶의 예배로 반복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나고, 천국에 가서도 이 예배는 계속된다. 예배는 제자훈련의 연료이다. 예배훈련으로 구비된 성도들에게 제자훈련은 땀이 아닌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성도의 예배 직무를 목회자, 예배인도자들이 대신 챙겨주었다. 오늘날 목회자의 일주일 업무 가운데 교인이 잡아야 하는 고기를 대신 잡아주느라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목회자가 쉽게 탈진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분부하신 일이 아니다. 목회자는 기도하고 말씀 전하고, 예배하고, 목회적 돌봄에 집중해야 한다. 회중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저들이 각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능동적으로 드리면서 각자에게 필요한 고기를 잡는 교회구조, 목회자의 가이드와 코치를 받아 하나님과 집적 소통하는 구조, 비본질과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본질의 단순함과 소박함에 집중하는 교회, 이것이 21세기 교회의 새로운 틀이 되어야 한다. 예배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잠자는 평신도를 깨우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한다.


- 이유정 목사 | 1991년 '좋은씨앗' CCM 듀오 사역을 시작했고, 2011년부터 예배사역연구소 소장으로서 예배 갱신을 위해 힘쓰고 있다. "오직 주 만이" 작곡가, 9개의 음반과 <잠자는 예배를 깨우라>외 2권의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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